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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은 한국 조선산업의 기념비적인 해였다. 독일을 비롯한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기술로 처음 잠수함을 설계하기 시작한 때다. 그것도 소형 잠수함이 아니라 3000t급 이상 중형 잠수함이었다.
2011년에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인도네시아에 10억8000만달러(약 1조5000억원) 규모의 잠수함 3척을 수출했다. 지난해 HD현대중공업이 페루와 잠수함을 공동 개발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올해는 HD현대와 한화오션이 ‘원팀’을 꾸려 폴란드(8조원)와 캐나다(60조원)의 잠수함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내수용에 머물던 K잠수함이 수출용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잠수함과 군함이 액화천연가스(LNG) 신한은행 자유적금 선박에 이어 K조선의 ‘효자 상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잠수함 국산화율 급등



1800t급 잠수함을 건조하는 ‘장보고Ⅱ 사업’을 시작한 2000년만 해도 국내 잠수함 부품의 국산화율은 38.6%에 불과했다. 이후 국내 부품 경쟁력을 강화해 20 도지혜 18년 3000t급 잠수함인 도산 안창호함을 진수할 때 국산화율을 78%로 끌어올렸다. 전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독자적인 잠수함 생산체계를 인정받았다. 이후에도 HD현대와 한화오션 주도로 9척의 잠수함을 생산하는 장보고Ⅲ 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되면서 잠수함 부품 국산화율은 80%를 넘어섰다.
국내 조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 국산화 원룸 투룸 의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수소전지업체 범한퓨얼셀은 독일 지멘스의 독점 체제를 깨고 잠수함용 수소연료전지 제조 기술을 확보했다. 이 전지는 2~3일에 불과한 잠항 기간을 2주 이상으로 늘려 차세대 잠수함의 주요 동력원으로 활용된다. 원일티엔아이도 수소를 저장하는 잠수함용 수소저장합금을 독일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개발했다. 국내 3000t급 이상 잠수함에 학자금대출생활비대출 독점 공급하고 있다.
잠수함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소나(항법 및 거리 측정 음향) 장치는 LIG넥스원이 국산화를 주도했다. STX엔진도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소나테크와 아이블포토닉스는 각각 지뢰, 어뢰탐지용 소나 장치를 제조했다. 이 밖에 더원(인버터), 케이앤에스아이앤씨(위성 안테나), 엔에스브이(유체소음기), 화신볼트산업( 국민은행 사업 특수 볼트·너트) 등이 해당 분야에서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K군함 수출도 늘어
대기업도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 힘쓰고 있다. HD현대와 한화오션이 잠수함 ‘수주 원팀’을 구성한 게 대표적이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12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선박·잠수함용 수소연료전지 공동 연구개발(R&D)에 나셨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계열사 간 강점을 살려 시너지를 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원천 기술을 보유한 중소·중견기업과의 협업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군함 수출도 늘고 있다. HD현대는 필리핀과 페루의 해군 현대화 사업에 참여해 10여 척의 군함을 수주했다. 이 회사는 2016년 필리핀에서 호위함 2척을 수주한 이후 초계함(2척), 원해경비함(6척) 계약을 잇달아 따냈다. 지난 1월에는 페루 시마조선소와 협력해 호위함과 경비함, 상륙함 등 4척을 생산하기로 했다.
한화오션은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앞세워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미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시라’에 이어 급유함 ‘유콘’, 군수지원함 ‘찰스 드루함’의 MRO를 맡기로 했다.
 ◇LNG선 원천기술 확보는 요원
민간 부문에서 K조선의 경쟁력은 압도적이다. 특히 중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서 고부가가치 선박의 대명사로 통하는 LNG선 수주를 독식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민수선 분야의 국산화율은 약 80~90%에 달하지만 핵심 기술은 여전히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선박의 두뇌’로 통하는 통합제어시스템(IAS)이다. 노르웨이 방산기업인 콩스버그가 LNG선 IAS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에서 분사한 에스엔시스가 2007년 LNG선 IAS를 개발했지만 점유율은 10%에 그친다.
LNG 탱크 설계는 프랑스 엔지니어링 회사인 GTT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은 LNG 탱크를 생산할 때마다 GTT에 한 척당 5%의 로열티를 낸다. 한국가스공사와 국내 조선 3사가 2015년 LNG 탱크 원천 기술을 개발했지만 구조적 결함이 발견돼 시장에서 도태되고 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국내 업체 중심인 방산 생태계와 달리 조선업에선 국내 업체보다 배를 주문하는 글로벌 선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며 “검증된 제품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해 새로 개발한 국산 제품이 곧바로 쓰이는 경우는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국내 조선 기자재 업체는 대부분 영세하고 글로벌 시장에 알려져 있지 않아 해외 선사의 선택을 받는 데 불리하다는 사실도 약점으로 꼽힌다. 한 조선 부품사 대표는 “원천 기술을 상용화하지 못한 K조선 생태계는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중국에 언제든지 추월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체 기술을 확보하는 연구도 활발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5월 GTT와 콩스버그를 비롯한 글로벌 선박 관련 업체들의 국가별 특허 출원 비중은 미국 29.6%, 일본 21.7%, 유럽 20.6% 등으로 고른 편이다. 반면 12개 한국 조선 관련 기업들의 특허는 76.3%가 한국에 집중돼 있다. 미국과 유럽에 특허를 출원한 비율은 각각 3.6%, 3.2%에 그쳤다.
이 연구위원은 “여러 국가에 특허를 출원하면 국가별로 지식재산권을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다”며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특허를 출원하는 게 K조선의 과제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