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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머릿속에 고맙다는 같지만조지 오웰(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의 배우자 아일린 오쇼네시 블레어.


오스트레일리아의 국제 인권 변호사이자 유명 논픽션 작가인 애나 펀더는 끝없는 돌봄 노동과 원고 마감에 지쳐 허덕이면서 신세 한탄했다. 남편은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떠안은 ‘독박 돌봄’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약자의 편에 섰던 작가 조지 오웰의 전기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알게 됐다. 자신이 믿었던 오웰은 진실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렇게 펀더는 ‘조지 오웰 뒤에서’라는 책을 쓰면서 대 문호 오웰을 만든 숨은 공로자, 아일린의 일생을 소환한다.
1905년 영국 사우스실즈에서 태어난 아일린 오쇼네시는 막 서른이 되었을 인터넷백경
때 파티에서 키가 큰 남자를 만난다. 작가 에릭 아서 블레어(조지 오웰의 본명)였다. 두 사람은 1936년 결혼한다. 아일린은 옥스퍼드 대학 장학생 출신의 독보적인 재원이었다. 결혼 전인 1934년 ‘세기말, 1984’라는 제목의 디스토피아적 시를 발표하는 등 문학에 열정적이었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대학원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비서실 등 모바일 바다 이야기 다운
다양한 곳에서 일하며 가학적인 고용주에 맞서 두번이나 동료들을 조직한 ‘투사’이기도 했다. 저자는 아일린이 “흔들리지 않는 고결함과 독립적인 태도,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 그리고 주변인들의 부조리함을 꼬집는 능력”이 있었다고 표현한다.



조지 오웰 뒤에서 l 애나 펀더 지음,릴게임오션
서제인 옮김, 생각의힘, 2만4000원


결혼 초기에 아일린은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남편과 “격렬하게 싸웠다”며 “살인이나 별거”라는 말을 농담처럼 썼다. 오웰은 글쓰기에 몰두할 뿐, 돈벌이나 집안일에 무관심했다. 아일린은 장화를 신고 똥물을 쏟아내는 변기를 고쳤고, 돈벌이를 위해 가축을 쳤으며, 주식수수료면제
아파서 골골하는 남편을 보살폈다. 저자는 오웰에 대해 한발 더 나아가는 이야기를 펼친다. 이 위대한 작가가 여성의 성적 욕망을 혐오하면서도 성적으로 집착했다는 것이다. 오웰은 10대 시절부터 강간을 시도하고, 친구의 여자 친구와 연애 사건을 일으켰고, 동네 여성을 스토킹했으며, 결혼 뒤에도 성매매를 하고, 물리적으로 여러 여성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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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충격은 오웰의 대표작이 아일린의 기획이었다는 점이다. 오웰의 친구들이나 전기 작가들도 인정하는바, 결혼 뒤 그의 글이 일취월장했다. 특히 ‘동물농장’은 갑자기 시적인 상상력이 추가되었다며 찬사가 쏟아졌다. 아일린은 오웰이 스탈린을 정면 비판하는 에세이를 쓰려고 하자, 동물이 나오는 우화로 써보라고 제안한 장본인이다. ‘동물농장’의 참신한 기획과 내용은 부부가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구상한 결과였다. 아일린은 오웰의 작품을 교정·교열하고 세심하게 매만졌다.



조지 오웰(가운데 키 큰 이)과 아일린 오쇼네시(가운데 앉은 이)가 1937년 3월13일, 스페인 우에스카 외곽 아라곤 전선에서 ILP(독립노동당) 부대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스페인 내전에도 함께 참전했다. 아일린은 영국 독립노동당(ILP) 스페인 지부에서 일하며 병참과 선전 업무를 맡았다. 총알이 오웰의 목을 관통한 뒤엔 병실에서 남편을 돌봤다. 전쟁통에 오웰의 원고를 지켜냈고, 체포될 뻔한 남편을 구출했고, 비자를 받도록 했다. 아일린의 존재는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에도 서른번 넘게 언급된다. 하지만 남편에게 초콜릿을 건네는 등 ‘아내’라는 이름의 보조적 위치였고 ‘전사’로서 활약은 축소되었다.
더 기가 찬 것은 오웰이 이토록 헌신적인 배우자를 끝없이 배반했기 때문이다. 오웰은 치료차 떠난 요양처에서도 아일린의 절친한 친구에게 추근거렸다. 모로코에서 지낼 때는 아일린의 양해 아래 10대 아랍인 성매매 여성과 섹스를 했다고도 알려졌다. 아일린은 남편 부재중에 홀로 아들을 입양하는 법적 절차를 끝냈다. 병을 키우다가 자궁의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대 위에 올랐다가 결국 사망한 날은 마침 오웰이 프랑스로 전쟁 취재를 떠나고 없던 때였다. 아일린의 나이 불과 39살이었다. 아일린은 삶의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오웰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이 돌아올 때쯤이면 나는 회복 중일 것이라고. 4년 뒤 오웰은 기자 출신의 편집자 소니아 브라우넬과 재혼했지만 그 자신도 몇달 뒤 47년이란 길지 않은 생을 마쳤다. 소니아는 ‘1984’의 여주인공 줄리아의 실제 모델이라고 알려졌다.



조지 오웰. ‘동물농장’을 쓸 때 아일린은 전체적 방향과 아이디어에 깊이 간여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믿었다가 한순간에 신뢰를 철회하는 ‘캔슬 문화’를 의식한 듯, 저자는 자신의 책으로 오웰을 ‘취소’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거듭 밝힌다. 저자가 문제 삼는 것은 오히려 ‘재현의 윤리’ 쪽이다. 오웰은 자신의 문학적 자취 속에 아일린의 이름을 전혀 남기지 않았고, 저자는 이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기에 “도용과 삭제를 합친 수법”이라고 비판한다. 오웰과 그를 찬미하던 7명의 남성 전기 작가들은 오웰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허용적으로 표현하고 아일린의 역할을 무시했다. 아일린도 남편의 애인들을 위로하는 등 폴리아모리(다자연애)를 실천한 것 같지만, 실제는 오웰의 방임과 바람기에 괴로워했다고 한다.
2023년 이 책이 영어로 처음 발간된 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모호하고 저자가 자신의 처지를 아일린에 무리하게 투사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가장 정면으로 치받은 사람이 바로 ‘맨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이다. ‘오웰의 장미’에서 오웰이 가꾸었던 장미 정원을 시작으로 저항의 기쁨과 희망을 아름답게 서술했던 솔닛은 ‘여성혐오자’ 오웰을 칭송했다며 비판을 받았다. 2020년 작가 실비아 톱이 쓴 ‘아일린: 조지 오웰을 만든 여성’(2020)에 대해 높게 평가한 솔닛은 비슷한 책인 ‘조지 오웰 뒤에서’는 혹독하게 비평했다. 이 책은 오웰의 출생과 혈통, 아버지의 직업 등 여러 오류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를 향해 “논픽션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기자로 훈련받으며 정확성을 의무로 배운” 자신은 소설처럼 상상력과 사실을 모호하게 기술하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조지 오웰을 지금 시대의 도덕성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질타했다.



조지 오웰의 두번째 부인 소니아(왼쪽 아래). 소니아는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와 열렬한 관계이기도 했다. 오웰은 소니아와 결혼한 뒤 몇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솔닛의 말처럼 팩트나 관점의 문제가 더러 보인다. 저자는 오웰의 혈통에 버마쪽 피가 섞여 있었을 것으로 막연히 추측하면서도 개연성 있는 증거를 꺼내놓지 못한다. 충분히 ‘배운 여성’임에도 오웰의 그림자에 머물러버린 아일린에 대해서도 시대 탓을 하며 안타깝게만 바라보는 점 또한 아쉬움이 남는다. (아일린보다 더 나이가 많고 영국보다 더 가부장적인 조선에서 살았던 나혜석이 써낸 ‘이혼고백서’를 보라!)
하지만 이 책은 솔닛의 평가처럼 엄정한 평전이나 전기라고 볼 수 없으며, 대문호의 지질함과 범죄를 폭로하는 황색 기사도 아니다. 오히려 ‘삭제된 여성 이름 찾기’라는 정확한 목표 아래 ‘대항 편집’된 반쪽의 역사로 읽혀야 마땅하다. ‘부인됨’(wifedom)이라는 원래 제목에서 보듯, 역사에서 잘려나간 빈 자리에 서서 바라본 관점임을 분명히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오웰 부부의 자취를 기록하는 동시에 자신의 부부생활과 가족 이야기를 섞어가며 진술하는 점 또한 마찬가지다. ‘미투 운동’의 물결 가운데 어른이 되어 가는 딸을 보면서, 견딜 수 없는 자신의 그림자 노동 때문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는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스타프 말러의 배우자 알마,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배우자 아네트, 스콧 피츠제럴드의 배우자 젤다 등 위대한 예술가 남편 ‘뒤에서’ 재능을 착취당하거나 취약함을 메워주고 역사 속에 이름이 삭제된 모든 재능 있는 여성 배우자에 바치는 헌사적 성격이 있다. 여성 고고학자 거다 러너가 “최초의 노예는 여성”이라고 썼듯, 가부장제라는 시스템이 만든 ‘부재의 역사’를 밝히려는 안간힘인 것이다.
그 밖에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가난하고 병약한 국민을 쉼 없이 호명하는 전시 동원 체제, 곳곳에서 포화가 터지는 참상, 신산한 살림에도 전체주의와 권력의 폭력을 비판하는 문학에 삶을 바친 부부의 고투, 1920~30년대 유럽인들의 보헤미안적 성 풍속도, 역사적 급변기를 맞은 지식인들의 사적 욕구와 공적인 시대 정신이 여러 층으로 겹치며 복합적으로 다가온다. 단지 누군가의 연애사, 뒤틀린 가족사가 아니라 시대사 그 자체로 보는 편이 옳다. 당대의 삭제된 복잡한 진실을 드러내고,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들에게 바치는 오마주라는 점을 인정받은 이 책은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가디언 등 많은 언론의 찬사를 얻어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