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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제일 재밌어요. 피사체에 미안하지만, 사람을 직접 상대하지 않아 스트레스가 적거든요. 뜻한대로 혹은 기대 이상 잘 나올 때 더욱 그러하고요.”
가수 이지상(60)씨가 사진전으로 충북 청주를 찾았다. 그는 17일까지 청주의 몽마르트로 불리는 청주 상당구 대성로 아트센터 올리브에서 ‘이지상 사진전 날아, 오르다’를 한다. 그는 전시 중간쯤인 오는 14일 오후 4시 ‘천천히 순하고 뜨끈하게’ 콘서트도 한다. 최광임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 ‘나의 늙은 애인아’ 등을 부른다. 전시·공연 부제는 ‘그대 걸음에 따뜻한 동행이 되고 싶어서’다. 청주에 뿌리내린 독립언론 국민연금연체금 ‘미디어 날’을 도우려는 뜻이다. 경비를 뺀 수익금은 ‘미디어 날’을 후원할 참이다.
9일 오후 사진전 개막식에서 그를 만났다. “좋은 뜻을 지닌 바른 언론이 좀 더 힘차게 날아오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도우려는 뜻보다 함께하려는 뜻이 더 크지요.”



이지 별내역 상 작가의 전시회 출품작. 오윤주 기자


36점 모두 풍경인데, 시공을 초월한다. 산을 막은 물, 물을 막은 산이 교차하고, 나무·꽃·창공·새가 자연과 어우러진다. 강원 철원 양지리(비상, 동행), 경남 창녕 우포늪(응시), 서울 밤섬(도약), 전남 순천 와온해변(황홀한 일몰), 강화 어류정(등대), 항공사 전남 진도 운림산방(파문), 지리산(노고단), 인천 연평도(엔엘엘 위의 별) 등 전국의 산하를 담았다. 그의 하느님이 사는 고향 경기 포천(울뫼마을 연)도 있다. 그는 ‘울엄마’라는 노래에서 생전의 어머니를 ‘그리운 나의 하느님’이라 했다. 시베리아의 푸른 눈으로 불리는 바이칼과 이르쿠츠크,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러시아·중앙아시아의 강·산·길도 눈 빌딩중개 에 띈다.
“15년 정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찍은 것들입니다. 사람에게 렌즈를 들이대는 게 미안하고 난감한지라 다 풍경입니다. 피사체에 신세지는 건데 자연은 그래도 말이 없으니까. 시베리아는 제가 열두 번을 다녀올 정도로 좋아하는 곳이죠.”
그가 굳이 관람객의 발을 끌어 말을 쏟아내는 사진이 있다. ‘아무르강의 일 국민주택기금 전세자금대출 상환 몰’이다. “세 번째 들렀다가 찍은 사진인데 마침 일식이었어요.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독립운동가 김알렉산드라 선생이 처형돼 버려진 아무르강인데, 마침 이 사진을 얻은 때가 당신이 숨진 지 100년 되던 해였어요. 꼭 이런 사진을 얻고 싶었는데,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일식까지 어우러져 감동이었죠.”
작품을 보던 도종환 시인(전 국회의원·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 사람 노래도 잘하는데, 사진도 좋고, 글도 잘 쓴다. 재주가 너무 많아 샘이 날 정도로 부럽다. 이 사진은 그야말로 예술”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고 그런 말씀 마세요. 히트곡 가수였다면, 베스트셀러 작가였다면, 사진 안 찍었어요”라고 답하고, 함께 웃는다.
그의 사진은 ‘아버지의 선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제가 쓸 수 있는 돈이 조금 생겨 카메라를 샀죠.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용기를 냈어요. 아버지가 주신 선물이 어디를 가나 동행하니 든든하고 좋아요.”
그는 경기 포천, 대구 등에서 틈틈이 전시하는 사진가, 시베리아 여행기 ‘스파시바 시베리아’, 북한 안내서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북’ 등을 낸 작가,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교수, 평화와 대륙을 꿈꾸는 사단법인 희망래일 이사 등으로 살지만, 여전히 ‘나는 가수다’라고 했다.
‘가수 이지상’은 1991년 전대협 통일노래 한마당에서 ‘통일은 됐어’로 입상한 데 이어 이듬해 꾸린 ‘조국과 청춘’이 출발이다. 지금까지 1집 ‘사람이 사는 마을’부터 ‘나의 늙은 애인아’까지 앨범 6장을 냈다. 그는 오는 11월께 7집 앨범을 내려고 마무리 작업 중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히트곡 없는 무명가수’라는 겸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흥얼거리지만 그의 노래인 줄 모르는 ‘숨은 히트곡’이 꽤 된다. 정호승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신흥무관학교 독립 청년 이우석 이야기를 담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 홍범도 장군 등 연해주 독립운동을 담은 ‘기차는 그 새벽을 떠났다’ 등이다.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담은 ‘사이판에 가면’, 효순·미선 추모곡 ‘겨우 열다섯’, 재일 조선학교 아이 노래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등 알려지고, 알아야 할 노래가 더 많다.
요사이 그는 ‘희귀 가수’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와 듀엣으로 부른 ‘12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부터다. “2005년 무렵 우연한 기회에 듀엣을 제안했고, 조용히 함께 노래 불렀던 기억이 있는데 노벨상 수상 뒤 알려졌어요. 하기야 노벨상 작가와 듀엣 한 가수가 몇이나 되겠어요. 희귀하긴 하겠죠. 하하.”



이지상(오른쪽) 작가가 사진전을 찾은 도종환 시인에게 자신의 작품 ‘아무르강의 일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그는 30여년 거리·광장·무대를 가리지 않는 가수로 살았고, 또 살아갈 참이다. 특히 청주와 인연이 깊다. 지난 2005년 겨울 인권 콘서트를 했으며, 충북민예총과 베트남 호아빈 평화학교를 위한 모금 공연에도 참여했다. 해마다 가을 추수를 끝낸 청주 오창 뜰에서 ‘하늘농부 가을음악회’를 연다. 주변 농민, 도시민 등이 어우러지는 축제인데, ‘그닥’ 빠르지 않은 노래로 관객을 춤추게 하는 그의 재주를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희귀 축제다.
“뜻있는 곳에서 불러만 주면 어디든 가지요. 특히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자리면 더욱 좋고요. 늘 천천히, 순하고, 뜨끈하게 노래하는 이지상으로 불리면 좋겠습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