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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6월 국립정신병원에서 석방되고 난 이후에도 이을호의 병 상태는 쉽사리 호전되지 않았다. 그해 크리스마스 때 갑자기 이을호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최정순이 애가 타서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경찰에도 신고해서 찾았으나 오리무중이었다.

사흘째 되는 날 홀연히 이을호가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행선지를 물어보니 경춘선 기차를 타고 가다가 일영을 지나 어느 역에서 내렸는데, 다시 돌아가려고 했으나 길을 몰라 물어물어 집까지 걸어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최정순은 이을호를 용인정신병원에 데려갔고 3개월 입원 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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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병 생활 중의 이을호. 맑은 눈을 가졌지만 좀처럼 웃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 민청련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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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증과 천재성 사이에서 방황하다

정신병원에서의 격리된 생활은 어느 정도 정신적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을호의 마음 속에서는 아내와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그러나 퇴원하고나서도 불안한 상태는 계속되었다. 수협 독도사랑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병증이 터지고, 그러다 2주일쯤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을호의 병증을 의학적으로는 조울증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조증에 속했다. 조증이 생기면 뭔가 서두르고 쫓기듯이 엄청난 불안증세를 보였고, 이틀 정도 잠을 자지 못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약을 주어 먹었는데, 투약을 하면 증세가 가라앉았지 1금융2금융차이 만 대신 수면시간이 많이 길어졌다.
용인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이후에 평소에 친분이 있던 출판사 중원문화사의 황세연 사장이 편집부장으로 특채했다. 출판사 일에서도 이을호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남영동>, <세계철학사>, 무협지 <녹정기> 등 여러 방면의 많은 책을 기획했다. 업무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고, 그 결과 회사는 많은 수익을 올 자동차담보대출추천 렸다.
중원문화사에서 2년 6개월 근무하고 지학사로 옮겨 7년간 근무했다. 출판사 근무 2년여 동안은 발작이 없었으나 이후 다시 증세가 심해지면서 발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학사에 다니는 동안 두 번의 발작이 있었다. 첫 발병 때는 워낙 탁월한 인재인지라 회사에서 치료비를 대고 병원에 입원시켜 주었고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하자 업무에 복귀했다. 퇴원한 이후에 이을호는 보답이나 하듯 수능특강 책을 기획출판해서 엄청난 대박을 쳤다. 그러나 두 번째 발작 때는 좀 더 심각했다. 회사에서 폭력사태를 일으켜 결국 회사에 사직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
1996년 초 이을호는 아동교육 전문 출판사인 한솔교육으로 옮겨 교육정보실장으로 근무했다. 웅진에서 근무하던 아내 최정순에게 같이 일할 것을 권유하여 최정순은 평생직장이던 웅진교육을 퇴사하고 한솔로 옮겨 상무로 근무했다. 이을호는 한솔에서 2년 반 동안 근무했으나 또다시 고질적인 정신병 발작이 일어나 회사에서 사고를 치고 결국 사표를 냈다.

그 뒤로는 집에서 쉬면서 치료를 했는데, 수염을 기르고 하루에 커피를 수십 잔씩 마시면서 방 안을 쉴 새 없이 배회하는 등 불안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런데도 본인이 병원에 가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고, 때로 약도 먹지 않아 가족들의 애를 태웠다. 그래서 가족들은 약을 몰래 우유에 타서 먹이곤 했는데, 약을 먹지 않고 2주쯤 지나면 반드시 발작증세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  지학사에서 근무하던 시기 회사 야유회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


ⓒ 민청련동지회




가족까지 함께 앓은 정신병

1999년 연말 12월 30일, 눈이 엄청나게 많이 온 날 새벽 3시에 발작증세가 크게 왔다. 괴성을 지르며 온 집을 길길이 날뛰고 다니는 이을호를 두고 어찌 할 바를 모르던 최정순은 지인 김한정(후에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다. 김한정은 삼성의료원을 소개시켜 주었다. 최정순은 완전히 눈이 돌아가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이을호를 간신히 차에 태워 삼성병원까지 싣고 가 어떻게 겨우겨우 입원을 시켰다. 입원 과정에서 담당자 질문에 몇 시간 답하는 동안 최정순은 완전히 초죽음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최정순은 서울대 김용식 교수를 소개받아 이을호를 서울대병원으로 옮겼다. 그 뒤로도 오산정신병원에 두 번, 을지병원에 두 번, 동국대병원에 한번, 서울대병원에 한 번 등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이을호가 발작증세를 보이면 최정순과 가족은 129 민간응급구조단에 연락하여 병원까지 호송하여 입원시켰다. 병원까지 가는 과정이 전쟁이었다. 그래도 김용식 교수를 만난 후로는 치료에 진전이 있었다. 그리고 클로자핀이라는 약이 개발되어 그 약을 복용한 후로는 발작 주기가 2년 정도로 뜸해졌다.
이을호의 정신병 발작은 가족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물론 아내 최정순이었다. 최정순은 이을호의 발작, 입원, 퇴원을 반복하는 과정을 치러내면서 본인도 심각한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고 약을 복용했다.
아들 준의와 딸 준아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중고등학교 시절 한참 사춘기 시절에 아버지의 정신병 발작을 수없이 목격한 아이들은 아버지의 돌변하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발작하여 병원에 옮기는 과정이 워낙 요란해서 주변에 사는 아이들의 놀림까지 받아야 했다. 그래서 두 아이들 역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고, 그런저런 이유로 아들 준의는 고2 때, 딸 준아는 고1 때 학교를 자퇴했다.
전쟁을 치르듯 요란스럽게 이을호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과정에서 주변 이웃들의 눈치가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최정순의 소원이 조용히 소란 없이 병원에 가는 것이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한 집에 오래 살지 못하고 서울 성산동에서 경기도 일산으로, 일산에서 다시 서울로 자주 이사를 했다.
이을호의 발작은 주로 어떤 일에 몰두할 때 일어났다. 예를 들면 <여기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같은 책을 쓸 때는 완전 집중하여 밥도 약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는데 이런 상태가 2주쯤 지나면 발병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을호가 몰입하기 시작하면 가족들이 완전 비상 상태가 되어 일을 그만하도록 만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시기적으로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겨울에 많이 발병했고, 김근태 선배의 죽음 같은 뭔가 정신적 충격을 주는 일이 생기면 시기에 상관없이 발병했다.

발작을 해 병원에 입원해서 대략 한 달 정도 지나면 회복이 되었다. 클로자핀의 효과도 있었다. 그래서 대개 입원한 지 두 달 정도 지나면 퇴원을 했다. 퇴원 초에는 약도 잘 먹고 비교적 편안한 일상을 보내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 약을 챙겨 먹는 걸 소홀히 하기 시작하고, 그러면 가족들이 긴장하고 매일 이을호가 약을 먹었는지 감시하고 챙겼다.










▲  2007년 12월 지인들과 만찬 모임에서 얘기하고 있는 이을호와 이를 경청하는 김근태


ⓒ 민청련동지회




회복세 이을호, 코로나로 생을 마감

2012년 6월 아내 최정순이 출판사에서 정년퇴직하면서 두 사람은 고향 부안으로 귀농했다. 어려운 결심이었지만 씩씩한 최정순의 추진력으로 귀농이 이루어졌다.
최정순이 귀농을 결심한 데는 이을호가 고향에서 노동하고 살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2017년까지 6년간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두 부부의 이름 가운데 글자를 딴 '정을두레'라는 이름으로 도시소비자와 직접 연결하는 농산물 위탁판매 사업을 했다. 나중에는 직접 김치를 담가 팔기도 했다. 농사일과 판매사업 모두 최정순이 주도했고, 이을호가 열심히 도왔다. 특히 김치를 포장하는 일은 이을호 담당이었다. 이을호에게 육체노동은 몸은 고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유익했다. 연례적으로 있던 정신병 발병은 귀농 6년간 발생하지 않았다.
최정순이 서울시의원에 도전하면서 2017년 시골살림을 접고 서울로 돌아왔다. 2018년 지방 선거에서 최정순이 서울시의원에 당선되었다. 이을호는 아들 준의와 함께 열심히 선거운동을 도왔고 당선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이 해에 이을호는 민청련 선배 장영달이 총장으로 있는 전주 우석대학교 부설 김근태연구소의 부소장으로 취임했다.
정신병으로 평생을 병원을 드나들었지만 이을호는 병원 가기를 무척 싫어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겪은 트라우마가 컸던 것이다. 약 먹는 것도 싫어해서 잠시 가족들의 감시가 소홀하면 약을 안 먹기 일쑤였다. 그러면 어김없이 정신병 발작으로 이어졌다.
2021년 10월, 또 한번 정신병 발작을 일으켜 을지병원에 입원했다. 40일 정도 입원했다가 회복이 되어 퇴원했다. 집에 돌아온 이을호는 다른 때와는 달리 기력이 없는지 많이 자고 계속 누워지냈다. 코로나19가 유행이었지만 몸이 약해서 백신을 맞지 않았다. 바깥 출입이 없는 사람인지라 가족들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정순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이을호에게 코로나19 백신 맞을 것을 권유했고, 이을호는 병원에 가서 백신 1차 주사를 맞았다. 그런데 주사를 맞고 집에 돌아온 이을호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열이 나고 기침을 하고 호흡도 불편해 했다. 3일째 되는 날 최정순이 병원에 가기 싫다는 이을호를 보채서 동네 이비인후과로 데려갔다. 의사가 이을호를 진찰해 보더니 깜짝 놀라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래도 또 병원에 안 가겠다고 버티는 이을호를 간신히 설득해서 119를 불러 경희대병원 응급실로 갔다. 경희대병원 의사가 진찰하더니 코로나19에 걸렸고, 이미 폐 80%가 손상되어 상태가 위중하다는 것이었다.
이을호는 즉시 코로나19 병동으로 옮겨졌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 얼굴을 보고 가라는 의사의 말에 병실로 가서 최정순이 "잘 치료받고 와요"라고 하자 이을호가 "배가 고파. 배가 고파"라고 대답했다. 그것이 최정순이 들은 이을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 후로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말 한마디 못하고 40일을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지내다 결국 2022년 1월 26일 오전 10시 45분 세상을 떠났다.

이을호의 장례는 가족의 뜻에 따라 민청련장으로 치러졌고, 유해는 화장하여 민주화운동 동지들이 있는 마석 모란공원묘지에 묻혔다.










▲  2022년 1월 이을호 장례식장. 당시 이재명 대통령후보가 보내온 조기와 민청련 활동을 역임한 당시 통일부 장관 이인영 및 인재근 의원의 조화가 보인다.


ⓒ 민청련동지회




"이을호가 있어서 행복했던 삶"

사람들은 이을호를 '비운의 천재', 또는 '고독한 천재'라는 말로 불러 그의 천재성이 꽃 피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의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자유자재하면서도 치밀한 논리는 그를 아는 지인들에게 항상 감탄과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의 천재적 재능은 남영동 대공분실의 고문 이후로 정신병원을 전전하면서 제대로 세상 속에서 발현되지 못하고 말았다. 개인적 불행이면서 공동체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이을호의 천재성은 단지 지식과 논리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처해 있는 어두운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조국의 역사 현실을 일찍 통찰한 역사적 선도자로서 지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 왔다"는 점에 있었다. 그는 선구자이며, 혁명가였고, 시대의 길잡이 등불이었다.
그래서 가족들은 이을호가 비운의 천재로보다는 "순수한 사람"(아들 준의), "지혜롭고 순수한 사람"(딸 준아)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이을호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면서 또한 평생의 반려자 최정순이 겪어야 했던 고생을 걱정해 주었다. 그러나 최정순은 이을호가 불행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이을호는 가정적으로는 굉장히 행복했습니다. 평상시의 이을호는 알뜰한 남편이었고, 굉장히 자상했고, 그리고 재미있었어요"라고 회상했다. 최정순이 밖에서 들어오면 이을호는 항상 "아이 러브 유" 하며 맞이했고 지금도 그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최정순은 그런 남편을 보면서 힘을 얻었고, 또 그렇게 힘을 얻어서 잘 살다가 참담한 상황이 오면 또 엄청나게 절망하고, 절망해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멀쩡하게 돌아와서 또 희망을 주는 이을호를 기억하고 있다. 이제 가족들은 이을호의 병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상처에서 많이 회복되었고, 몹시도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  2009년 3월 민청련동지회 남도 벚꽃 여행에서 이을호 최정순 부부


ⓒ 민청련동지회